〈기고〉 ‘칠천량 1만명 궤멸설’ 당대 사료 그 어디에도 없다

〈기고〉 ‘칠천량 1만명 궤멸설’ 당대 사료 그 어디에도 없다

시민과 함께하는 원균 학당 김연진 학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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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균 학당 김연진 학장

*이 글은 칠천량해전 기념공원에서 열린 제7회 칠천량해전 추념회에 참가한 경기도 평택의 '시민과 함께하는 원균 학당' 김연진 학장이 보내온 글입니다.

존경하는 거제시민 여러분, 그리고 이 자리에 함께하신 관계자 여러분.

저는 오늘 원균 장군을 옹호하기 위해 이 자리에 선 것이 아닙니다. 한 사람을 영웅으로 만들거나, 또 다른 한 사람을 패장으로 만들기 위해서도 아닙니다.

제가 오늘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단 하나입니다.

역사기념관이 시민들에게 전달하는 역사는 과연 어떤 근거 위에 세워져야 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우리가 흔히 ‘칠천량해전’이라고 부르는 이 사건에 대해 김인호 박사는 원균 평전 《타는 바다》에서, 해전이라 부를 만한 정상적인 전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한 채 지휘체계가 무너지고 조선 수군이 일본군에 포위·추격당하면서 전투능력을 상실해 도망 한 사건으로 바라봅니다.

더욱 주목해야 할 것은 전투 직후의 당대 기록입니다.

가장 권위있는 1차사료《선조실록》에 격군들이 도망하고 패한 배들을 육지 가까이에 정박시켰기 때문에 “사망자는 많지 않았다”는 취지의 보고와 물이 마르듯 도망하여 살아남은 자들이 많았다는 격군들의 증언도 있습니다.

이는 오늘날 널리 알려진 ‘조선 수군 1만여 명 괴멸’ 이라는 서사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습니다. 물론 이 사건에서 조선 수군이 패배를 당했다는 사실을 부정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패배했다는 역사적 사실과, 근거가 확인되지 않은 숫자를 역사적 사실처럼 전달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오늘날 칠천량해전을 이야기할 때 너무나 익숙하게 등장하는 표현이 있습니다.

“조선 수군 1만여 명이 괴멸했다.”

수없이 반복되면서 이제는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 역사적 사실처럼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묻고 싶습니다. 그 ‘1만 명’이라는 숫자는 도대체 어느 당대 사료에서 나온 것입니까?

《선조실록》을 비롯한 당시 관찬기록에서 칠천량해전으로 조선 수군 1만여 명이 전사하거나 괴멸했다는 기록은 현재까지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오히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전투 직후 보고에는 “사망자는 많지 않았다”는 취지의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그렇다면 ‘1만 명 괴멸’이라는 숫자는 언제부터 칠천량을 대표하는 역사적 사실처럼 자리 잡게 된 것일까요?

저희가 관련 자료와 언론 보도, 연구사업의 흐름을 추적해 본 결과, 특히 2008년을 전후한 이순신프로젝트 거북선을 찾아라 사업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1만여 명’이라는 표현이 언론에서 대중서사를 통해 본격적으로 확산시켰고

다크투어리즘이라는 관광 콘텐츠를 만들어 역사공원을 통해 설명이 되면서 어느 순간 시민들은 그것을 검증된 ‘역사적 사실’로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저는 바로 이 지점을 문제 삼고자 합니다.

스토리텔링은 역사를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방법이어야지, 사료가 말하지 않는 사실을 만들어내는 방법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특히 역사기념관과 역사공원은 일반 관광시설과 다릅니다.

공공기관이 조성한 역사공간에 하나의 숫자가 적히는 순간, 시민들은 그것을 국가와 지방자치단체가 검증한 역사적 사실이라고 받아들이게 됩니다.

아이들이 보고, 학생들이 배우고, 관광객들이 그 내용을 기억해 돌아갑니다. 그리고 그 내용은 다시 언론과 인터넷, 블로그와 교육자료를 통해 끊임없이 복제됩니다.

그렇게 10년, 20년이 지나면 출처조차 불분명했던 하나의 문장이 어느 순간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 ‘역사’가 되어버립니다.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역사 왜곡의 방식이라고 생각합니다. 저희는 칠천량의 패배를 지우자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패배했다면 왜 패배했는지, 당시 조선 수군의 실제 전력은 얼마였는지, 몇 척이 출전했고 몇 척이 손실되었는지, 병력은 얼마나 살아 돌아왔는지, 흩어졌던 조선수군은 명량과 노량으로 얼마나 집결했는지, 전투 직후 조정에는 어떤 내용이 보고되었는지를 당대의 기록을 통해 더욱 철저하게 밝혀야 합니다.

그리고 확인되지 않는 것은 솔직하게 “확인되지 않는다”고 써야 합니다. 그것이 역사기념관의 책임이고, 공공 역사공간이 가져야 할 최소한의 원칙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오늘 이 자리에서 관계기관에 세 가지를 요청드립니다.

첫째, ‘조선 수군 1만여 명 괴멸’이라는 표현의 출처와 사료적 근거를 명확하게 공개해 주십시오.

근거가 있다면 어떤 사료의 어느 기록에 나오는지 시민들에게 제시해 주십시오. 그리고 당대 사료에서 그 근거를 확인할 수 없다면, 과감하게 바로잡아 주십시오.

둘째, 칠천량과 관련된 전시·안내문·관광 콘텐츠 전반을 당대 관찬사료와 검증된 연구성과를 중심으로 다시 검토해 주시기를 요청드립니다.

셋째, 임진왜란의 격전지였던 이곳 거제 앞바다를 지켰던 연합함대, 삼도수군을 기억해 주십시오.

특히, 이름 없이 스러져간 수군들의 희생을 기리고, 경상우수군이 나라의 바다를 지키기 위해 보여준 헌신과 용맹 또한 함께 기억하고 기릴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주시길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한 말씀만 더 드리고 싶습니다. 역사에서 가장 두려운 것은 새로운 질문이 아닙니다. 아무도 질문하지 않는 오래된 오류입니다.

수십 년 동안 반복되었다고 해서 사실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수많은 책과 관광안내판에 적혀 있다고 해서 그것이 역사적 사실이 되는 것도 아닙니다.

역사기념관은 가짜뉴스를 확대 재생산하는 공간이 아니라, 시민들이 기록을 통해 과거와 만나는 공간이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칠천량의 역사 역시 다시 기록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저는 오늘 이 자리에서 다시 한번 묻겠습니다.

“조선 수군 1만 명이 괴멸하여 사망했다.” 그 기록은 어디에 있습니까?

이 질문에 정직하게 답하는 것, 그리고 확인된 사실과 후대의 출처없는 과장된 해석을 구분하는 것. 바로 그 지점에서부터 칠천량의 진실된 역사 복원은 시작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

 

 

거제뉴스와이드 (geojenewswid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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