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票)를 구걸하는 '고귀한 거지들'에게 보내는 응원···출마라는 결단이 감당하는 민주주의의 기회비용

표(票)를 구걸하는 '고귀한 거지들'에게 보내는 응원···출마라는 결단이 감당하는 민주주의의 기회비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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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환 거제웹진 대표

과거 신문 만평이나 풍자에는 선거철마다 단골처럼 등장하던 소재가 있었다. 바로 ‘정치인과 거지’의 비교다. “정치인과 거지는 닮은꼴이지만, 사실 정치인이 거지보다 못하다”라는 서글픈 농담이 그것이다. 얼핏 들으면 정치인을 깎아내리는 비속어처럼 들리지만, 그 속내를 뜯어보면 이보다 더 처절하고 뼈아픈 해학은 없다.

구걸의 방향이 다른 두 부류

거지와 정치인의 공통점은 명확하다. 둘 다 '구걸'을 업으로 삼는다는 점이다. 거지는 끼니 연명을 위해 밥을 구걸하고, 정치인은 4년의 명운을 위해 표를 구걸한다. 고개를 숙이고 손을 내밀며, 타인의 자비와 선택에 자신의 생존을 맡긴다는 점에서 이 둘의 처지는 본질적으로 닮아 있다.

하지만 결정적인 차이는 그 ‘방향’에 있다. 거지는 밖에서 얻은 것을 집으로 들고 들어가 식솔의 배를 채우지만, 정치인은 정반대의 길을 걷는다. 그들은 선거라는 전쟁터에 나설 때 결코 빈손으로 나가지 않는다. 오히려 멀쩡히 있던 집안의 곳간을 털어 밖으로 나온다. 심지어 빚을 내는 사람도 있다. 이것이야말로 '거지보다 못한 정치인의 숙명'이자 역설이다.

자기 것을 잃어야 얻는 것들

출마를 결심한 정치인의 통장은 더 이상 개인의 자산이 아니다. 그것은 민주주의라는 거대한 제단에 바쳐지는 공양미와 같다. 남들은 노후 대책을 세우고 자녀의 미래를 위해 적금을 부을 때, 후보자는 그간 일궈온 경제적 성취를 '선거 비용'과 '정치자금'라는 이름으로 쏟아붓는다. 당선되면 명예를 얻고 비용을 보전도 받지만, 낙선하면 그야말로 ‘상거지’가 따로 없는 처지가 된다.

이것은 일종의 '거룩한 가산탕진'이다. 자신의 안온한 삶을 담보로 공동체의 미래를 바꾸겠다고 나서는 이 무모한 용기를 우리는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단순히 권력욕으로만 치부하기엔 그들이 치르는 기회비용이 너무나 막대하다. 자기 돈을 써가며 길거리에서 낯선 이들에게 90도로 허리를 굽히는 고역을 자처하는 행위는, 차라리 공익을 향한 처절한 헌신에 가깝다.

가족의 희생, 연대책임의 무게

더욱 눈물겨운 대목은 '가족의 헌신'이다. 정치인이 표를 구걸하러 나갈 때, 대개 혼자 품을 팔지 않는다. 평생 정치와 상관없던 배우자를 앞세우고, 공부하기 바쁜 자녀들의 손을 잡아 거리로 이끌기도 한다. 때로는 연로하신 부모님까지 찬바람 부는 길 위에 서신다.

선거철이면 후보자와 그 가족들은 '폴더 인사'의 달인이 된다. 사람들의 차가운 눈총을 견디며 명함을 돌리고 지지를 읍소한다. 자녀들 역시 사생활을 반납한 채 SNS 홍보 요원이 되거나 촌스러운 선거 점퍼를 입고 현장을 누빈다. 집안의 재산을 털어 넣는 것도 모자라, 가족의 노동력과 명예까지 '탈탈' 털어 넣는 것이 선거의 현실이다. 거지는 식솔을 먹여 살리려 구걸하지만, 정치인은 식솔의 평화까지 제물로 삼아 '공익'이라는 이름의 구걸에 나선다.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비용

우리는 정치를 비판하는 데 익숙하다.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해보자. 누군가는 이 고된 과정을 감내해 주어야 사회 시스템이 유지된다. 자신의 가산을 쓰고 가족의 희생을 발판 삼아 지역 민원을 해결하고 조례를 만들겠다고 나서는 이들이 없다면, 민주주의라는 엔진은 멈춰버릴 것이다.

그들이 거리에서 표를 구걸하는 행위는, 역설적으로 유권자가 주인임을 증명하는 가장 강력한 퍼포먼스다. 비록 그 과정이 해학적이고 안쓰러울지라도, 우리는 그 손에 담긴 '간절함의 무게'를 가늠해봐야 한다. 공적 무대에 뛰어든 그들의 결단은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보이지 않는 기회비용이기도 하다.

길 위의 모든 ‘정치 일꾼’들을 응원하며

선거철이 되면 우리 거제에는 수많은 선거사무소가 문을 열고 후보자들이 쏟아져 나온다. 그들은 또다시 배우자와 자녀의 손을 잡고 우리 앞에 고개를 숙일 것이다.

그들을 볼 때 "제 돈 쓰고 저 고생을 사서 하네"라고 혀를 찰 수도 있다. 하지만 한 번쯤은 따뜻한 눈길을 보내주자. 거지는 밥을 얻어 제 배를 채우지만, 이 '고귀한 구걸'에 나선 이들은 우리의 표를 얻어 우리의 삶을 채우려 노력하기 때문이다.

당신들의 가산탕진이 헛되지 않기를, 가족들의 붉어진 눈시울이 보람찬 결실로 이어지기를 응원한다. 당신들이 기꺼이 고개를 숙여주기에, 우리 유권자들은 비로소 고개를 들고 '주인' 노릇을 할 수 있다. 이제 그 주인된 권리를 어떻게 행사할 것인지, 우리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차례다.

거제뉴스와이드 (geojenewswid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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